찌라시 재전송도 범죄일까? 아닐까?

가끔 메신저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달받는 일명 찌라시. 최근에 가수와 배우, 걸그룹 멤버들까지 실명까지 거론되면 무차별적으로 돌았는데요. 이런 찌라시에 대해 해당 연예인들이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스마트폰과 SNS, 커뮤니티로 퍼지는 루머들. 과연 이런 찌라시를 퍼나른 사람들도 처벌이 가능할까요? 그냥 재미로 아니면 팔로워를 늘리기위해 아무런 생각없이 퍼나르거나 재전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찌라시에 거른된 연예인들이 강력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로인해 경찰이나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를 할거라고 합니다. 찌라시를 처음 작성한 사람은 당연히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지인들과 돌려볼생각으로 재전송을 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단순한 재전송.... 불법일까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찌라시 내용을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 뿐 아니라, 그 정보를 유통한 사람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고죄이므로 피해자가 직접 고발을 해야만 처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만.... 불법은 불법입니다. 
그리고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상관없이 없습니다. 모두 불법 행위입니다. 내용을 퍼뜨린 것이 사실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인데요. 그 내용이 거짓일 경우엔 과중한 처벌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제일 궁금해지는것중에 하나가... 찌라시에보면 A양, B양, ㄱ군 ㄴ군 등등 이렇게 이니셜로 작성이 많이 되는데요. 그런데 이런 이니셜이 포함되어있는 기사나 게시물의 댓글에 이니셜 당사자가 누군인지 적으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런것도 고의성과 공연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지 알수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처벌대상이 될수 있다는 거죠.

디지털 주홍글씨, 잊힐 권리인가?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인가?

디지털 주홍글씨. 인터넷에서 활동하면서 남은 자신의 흔적이나 치부 등을 뜻하죠.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몸에는 찍히진 않지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에서 마치 살아있는 듯 여기 저기에 떠돌아다니는... 이놈은 수많은 사람들이 복사해서 전송하고 다시 복사 하고 다시 전송을 해서 삭제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최근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에 대해 수정이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잊혀질(잊힐) 권리'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유럽에서는 잊혀질(잊힐) 권리가 확대가 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다음 달에 가이드라인을 제정을 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과연 잊혀질(잊힐) 권리인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침해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사생활 침해나 명예 훼손, 불법 정보에 대해서는 포털업체 등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삭제 대상을 원치 않는 모든 정보로 확대시킬것인가 여부입니다. 정부는 현재 본인이 쓴 글에 한해서 합법적이더라도 삭제를 원할 경우는 허용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워서 때렸다" 발로 걷어차 조카 숨지게 한 이모 체포


◀ 앵커 ▶ 

3살짜리 조카를 발로 차 숨지게 한 이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조카가 미워 누워있는 상태에서 발로 찼다"고 진술했는데, 경찰은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곽동건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경기 김포경찰서는 3살짜리 조카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이모 26살 한 모 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한 씨는 지난 15일 오후 4시쯤 경기 김포시 자신의 아파트에서 3살짜리 조카의 배를 수차례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한씨는 폭행 직후 조카가 구토를 하며 정신을 잃자, 동네 의원을 거쳐 한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결국 조카는 숨졌습니다. 

사망원인이 불분명하자 병원 측은 경찰에 신고했고, 국과부 부검 결과 장 파열 등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 사망원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이 추궁하자 이모 한 씨는 "평소 미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발로 조카의 배를 수차례 찼다"고 자백했습니다. 

숨진 조카의 어머니이자 한씨의 언니는 지난 9일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찰은 한 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확인하는 한편, 이전에도 조카를 학대한 사실이 있는지 추궁하고 있습니다. 

'분당 실종 예비군' 손 결박돼 숨진 채 발견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예비군 훈련을 마친 뒤 실종된 29살 신원창 씨가 일주일 만인 오늘 오후 한 건물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오늘 오후 1시 반쯤 지하철 분당선 오리역 근처 한 건물 지하주차장 기계실에서 신 씨의 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에서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신 씨가 이 건물에서 지인들과 가끔 모임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코코 샤넬, 나치 스파이 맞다" 프랑스 비밀문서 70년 만에 공개

프랑스 역사학자 모임, 2차대전 첩보기관 공작문서에서 확인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나치 독일 스파이 활동을 했음을 보여주는 비밀문서들이 70년 만에 공개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첩보기관들이 주도한 지하공작을 연구해온 프랑스 역사학자 모임은 16일(현지시간) '코코' 샤넬 등 유명 인사들의 당시 행적과 공작 등을 소상히 기록한 수천 점의 비밀 기록들을 공개했다고 AP통신과 미러 등이 보도했다.

 기록들은 나치 독일의 첩보기관(abwehr,아프베어), 샤를 드골 장군이 이끌던 반독(反獨) 저항조직(레지스탕스) 첩보기관, 친독 비시 정권 정보기관 등 당시 관련 기관들로부터 나온 서한, 보고서, 전문, 사진 등으로 오랫동안 수도 파리 교외 한 성곽에 보관돼오다 이번에 공개됐다. 기록 중에는 나치 정보 요원들이 벌인 레지스탕스 조직원 소탕 공작 상세 보고서,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드골 정권의 비밀공작 활동 상세 내용과 전범 추적 작업관련 문서들도 들어 있다고 AP는 전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코코' 샤넬 등 나치의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한 의혹을 받는 유명 인사 관련 파일들이다. 샤넬 관련 파일 중에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4년 11월 파리에서 작성된 메모도 포함됐다.


메모는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한 정보원은 샤넬이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귄터 폰 딩크라게 남작의 정부 겸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며 " 딩클라게는 1935년 스페인 주재 독일대사관 주재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고 선전전문가로 첩보기관 요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들의 판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밀 기록 관리를 책임진 관리자는 샤넬이 아프베어에 공작원으로 정식 등록된 사실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 제공, 임무 수행 등 활동을 위해 샤넬을 공작원으로 정식 등록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샤넬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과연 자신이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종전 직후 독일로부터 압수한 이들 기록 가운데에는 또 나치 비밀경찰(게슈타포)이 보관한 레지스탕스 조직원의 개인 관련 문서들과 협력 용의자들에 대한 조사 보고서 등도 포함됐다. 모임 회원인 토마 퐁텐느는 훗날 독일 측에 협력한 한 지역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사례를 들어 저항한 사람들과 반대로 배신한 사람들 간의 분열보다 역사는 훨씬 더 복잡하다면서, "게슈타포 문서는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자백을 얻기 위해 그의 아내와 딸을 억류한 사실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공작에 간여한 개인들에 대한 평가도 드러났다.

 드골의 정보기관은 1943년 메모에서 미국 태생의 가수 겸 댄서인 조세핀 베이커가 "사심이 없으며,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그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프랑스 정부가 1999년 국방부에 기밀분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넘긴 것들 가운데 모임에 참가한 역사학자들이 오랜 작업 끝에 발견한 중요한 것들이다. 한편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샤넬의 창시자인 샤넬의 나치 스파이 의혹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그가 조국을 지키려고 파리를 떠나지 않고 리츠 호텔에서 생활하다 독일군 장교와 사랑에 빠졌으며, 전쟁이 끝나자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샤넬이 단순한 협력자 차원을 벗어나 스파이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 뒤인 2011년 미국 언론인 핼 보건이 펴낸 '적과의 동침, 코코 샤넬의 비밀전쟁'(Sleeping With the Enemy: Coco Chanel's Secret War)에서 당시 57세인 샤넬이 아프베어의 비밀공작원이 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나치 선전선동 책임자로 실세였던 요제프괴벨스의 최측근인 딩크라게의 구애와 회유로 스파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또 전세가 불리해지자 독일이 영국에 밀사로 샤넬을 보냈으며, 이는 샤넬의 옛 연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전시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이 서로 흉금을 터놓는 친구라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