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신용카드 복제 한국인 8명 체포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필리핀 국가수사국(NBI)이 마닐라 케손시티의 한 개인 주택을 급습해 김모 씨등 한국인 8명을 검거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NBI는 이 씨 등이 케손시티 지역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신용카드 복제 및 해킹, 기타 사이버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가상의 제품을 판매하는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신용카드로 구매하려는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확인, 카드를 무단 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NBI는 이들이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대규모 사이버 범죄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필리핀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검거되더라도 불구속 수사로 곧바로 석방돼 온라인 도박사업을 벌이는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황영희 엄정화 동갑 공개

황영희는 21일 방송된 tvN ‘현장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왔다 장보리'에서 도씨 역을 맡았던 황영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20년간 연극계에 몸 담았고, 나이는 이영자보다 동생인 46세”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언급했다.

또 황영희는 “실제 엄정화와 동갑인데 ‘엄정화와 동갑이냐’는 댓글을 본적이 있다. 사람들이 날 50대 중반까지도 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임창정 공식입장, 소속사 너무 빠른 해명

 한 매체는 "임창정이 최근 지인 모임에서 만난 30대 일반인 여성과 교제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이 매체는 임창정이 최근 여자친구와 제주도로 동반 여행을 다녀왔으며, 지난 지인들과 함께 간 주말 골프 여행에서도 여자친구와 동반했다고 전했다.


이에 임창정 소속사 NH미디어 측은 "임창정이 제주도에서 지인들과 골프 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오해가 불거진 것"이라며 "임창정 본인은 다음 달을 목표로 준비 중인 새 앨범과 영화 '치외법권'을 앞두고 의도치 않게 열애설로 화제가 되어 기쁘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편 임창정은 이날 소속사의 빠른 해명 이후 자신의 팬 커뮤니티에 "그리 빨리 대응하면 실검에도 못 오르는 것 아니냐"며 "이틀은 가야 체면이 선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임창정은 "진짜길 기도 좀 해줘라. 이것들아"라면서 "기자한테 흘린 지인 누군지 알겠는데 좀 더 알아보지. 어설퍼"라고 올려 웃음을 자아냈다.

신해철, 장협착증 수술 후 심장 정지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을 받은 신해철은 현재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상태다.

신해철은 현재 저체온치료를 받으며 보호자의 동의 후 긴급 심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관계자는 “신해철이 현재 눈은 떴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앞서 JTBC ‘속사정쌀롱’ 제작진은 “제작발표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신해철의 건강이 악화됐다”면서 “신해철의 건강 상태를 지켜본 후 제작발표회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진은 이날 “신해철 소속사를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신해철의) 건강 상태를 지켜본 후 내일 예정된 제작발표회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현재 진행 여부를 두고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족구왕 황승언, 터질듯한 볼륨+11자 선명 복근

최근 황승언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 중인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황승언은 화이트 톱에 밀착되는 팬츠를 입고 완벽한 몸매를 드러냈다. 특히 잘록한 허리와 선명한 복근이 감탄을 자아냈다.


네티즌들은 “족구왕 황승언, 몸매 대박이다”, “족구왕 황승언, 몸매도 예쁘지만 얼굴은 더 대박”, “족구왕 황승언, 운동 열심히 하는 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배우 신세경의 닮은꼴로 유명세를 탄 황승언은 영화 ‘족구왕’에서 캠퍼스 퀸 안나 역으로 출연했다. 최근에는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 극중 박해진의 여자친구로 출연한 바 있다. 

이주노, 23살 부인 셋째 임신

 SBS ‘자기야-백년손님’ 녹화에서 이주노는 “현재 셋째가 뱃속에 있다. 내년 5월 출산할 예정이다”라고 고백했다. 이주노의 고백에 출연자들의 아낌없는 축하가 쏟아졌다고. 

이주노는 “아내가 아이 둘을 힘들어 해 셋째는 터울을 많이 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23살 연하 아내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과시한 이주노의 셋째 임신 고백은 오는 23일 방송된다. 

신해철, 심장 이상으로 심폐소생술 받고 응급실 이송

서울아산병원의 한 관계자는 22일 오후 동아닷컴에 “응급센터에 확인한 결과 신해철 씨가 금일 오후 2시 심장이상으로 우리 병원을 찾은 것이 맞다”며 “그는 현재 응급센터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신해철 씨가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 인근 병원에서 심장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그의 심장 이상징후를 느낀 병원에서 우리 쪽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신해철의 상태에 대해서는 “현재로써는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며 “정밀검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며 나온다고 하더라도 병원 규정상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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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박정희 대통령의 항일기록 발견!!!에대해서 꼭 알아야 할 사항!!!

제일 먼저 김시현 선생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다음으로 해방뒤 김규식 선생의 비서실장이었던 송남헌 선생을 알아야 한다. 
송남헌 선생은 그의 저서 ;"해방 3년사"26쪽에 박정희 대통령의 독립운동 거사에 참여한것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송남헌 선생은 말년을 민족문제 연구소의 고문으로 활동한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송남헌 선생이 작고하시자 역사를 조작하였다!
이러한 정황들이 잘 말 해 준다!
필요한 지식은 네이버에서 열람하세요~

독립운동가 김시현(金始顯, 1883-1966) - 한국 최후의 레지스탕스, 훈장없는 독립투사 

본관 안동(安東). 자 구화(九和). 호 하구(何求).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 현애동 출신으로 아호는 하구(何求)다. 아호가 재밌다. 그가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한다. 검사가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는가? 차라리 하구(何求)가 좋겠다”고 빈정대었다고 한다. 이후 본래 학우(鶴右)였던 호를 하구로 바꾸어 버렸다.


해방 뒤 김규식 박사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송 남현(75)옹은 김시현이 김규식과 호형호제하며 무척 친밀하게 지냈으며 한민당이 이승만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존폐 위기에 처해 있을 무렵 김시현이 인촌 김성수의 부탁을 받고 김규식을 당수로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비서 송남헌 선생은 그의 저서 "해방3년사" 26쪽에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해방3년사, 1990년 까치사 간행)


송남헌 선생은 누구?
송남헌(宋南憲, 1914년 4월 11일~2001년 2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통일운동가, 근현대사 연구가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단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후 한민당에 참여하였으나, 1946년 이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고 김규식의 비서가 되었다. 5.16 군사혁명 때에는 2년간 옥고
를 치루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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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 연구소

4. 조직구성


고문 : 이강훈(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장), 송남헌(민족통일연구회 명예회장), 김태길(서울대 명예교수), 허웅(한글학회 이사장), 강석주(동국 역경원 이사장)
명예이사장 : 이돈명(변호사, 전 조선대학교 총장)
이사장 : 조문기(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소장 : 한상범(동국대법학과 교수, 민주화인권운동)
이사회 : 김상근(KNCC 인권위원장), 김정헌(공주대교수, 전민미협회장), 명진(조계종 종회 의원), 송기인(신부, 부산교회사 연구소이사장), 심재식(인의협 명예회장), 오충일(전 KNCC 회장),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 이두호(만화가), 정성헌(우리말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한수산(작가)
지도위원 : 강만길(전 고려대교수), 김남식(통일문제 전문가),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성대경(성균관대 대학원장), 송건호(전 한겨레신문 고문), 윤병석(전 인하대교수), 이만열(숙명여대 교수), 임헌영(문학평론가), 정창렬(한양대 교수), 조동걸(국민대 대학원장)
연구위원 : 구양근(성신여대 교수), 노동은(목원대 음대 학장), 박영재(연세대 교수), 윤건차(일본 神祭川대학 교수)


송남헌 선생은 말년에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보냈다.

출처 http://sookut.com/699963449873

박정희가 왜 18년 독재자인가? 역사왜곡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역사적 팩트를 말하자.

 박정희가 왜 독재자인가?

사심없이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박정희! 그래서 입에풀칠 못하던 시절 산업화를 성공시켜 경제를 성공적으로 부흥시켜 세계를 놀라게한 지도자! 군사력이 우위였던 북의 남침과 경제기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대통령인 박정희가 좌파에 18년 장기독재집권자로 매도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젊은이는 박정희를 18년독재로 장기집권한 자로 매도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도 이렇다. 이는 역사가 왜곡된 결과이다.
 박정희! 그는 5 16군사혁명 이후로, 군정통치를 (1961~1963) 2년간 재임하였으면 민정이양과 동시에 민의선거에 출마한다
기호 3번으로 민주공화당에 출마하였고 그의 적인 윤보선도 출마를 하였다 그외에 기타 신흥당의 장이석, 추풍회의 오재형, 정민회의 변영태, 국민의당이 허정, 자유민주당의 송요찬등 총 7명이 대통령 선거의 출마하였다
여기서 국민의당의 허정과 자유민주당의 송요찬등이 중도 하차하게 되면서 선거인원은 다시 총 5명으로 된다.

1963년 10월 15일 국민의 직접선거(이하 직선제)의 따라 총 투표율85% 으로 처음으로 대통령이 됨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결과 


박정희46.6%(이하 470만 2640표 ) 정당소속 민주공화당
윤보선45.1%(이하454만 6614표)  정당소속 민정당
오재형40만 8664표  정당소속 추풍회의
변영태는 22만 4443표  정당소속 정민회의
장이석은 19만 8837표  정당소속 신흥당

투표 결과 대한민국 대통령 제5대 박정희 후보 당선

1967년 5월 3일 국민의 직접선거(이하 직선제)의 따라 총 지지율 51.4%로 재선에 성공
 다시 대통령 재임기간이 만료되면서 2선에 도전한 박정희 대통령 후보
당시 선거 구도는 박정희·윤보선·이세진·전진한·김준연·오재영 로 총 6명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 이하
민주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윤보선
정의당 이세진
한국독립당 전진한
민중당 김준연
통한당 오재현
대중당 서민호 (출마하나 중도하차)

대통령 제6대 대통령 선거 결과

1967년 5월 3일 국민의 직접선거(이하 직선제)의 따라 총 투표율 83.60%
박정희 51.4%(568만 8666표) 정당소속 민주공화당
윤보선 40.9%(452만 6541표) 정당소속 민정당
오재형 26만 4533표 정당소속 통한당
김준연 24만 8369표 정당소속 민중당
전진한 23만 2179표 정당소속 한국독립당

투표 결과 대한민국 대통령 제6대 박정희 후보 당선

3선 개헌안 국민투표 실시===>65.1%의 찬성으로 3선 개헌안 채택
헌법에 2선까지만 가능하나, 3선개헌안을 국민투표제로 실시 1969년 10월 17일 총유권자 77.1% 중 찬성자65.1%,반대자12%로 3선개한 통과

1971년 4월 27일 국민의 직접선거(이하 직선제)에서 따라 53.2% 당선===>임기 1976년까지 확보
대한민국 7대 대통령 선거구도
민주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김대중
국민당 박기출
자민당 이종윤
정의당 진복기 총 5명이 대통령 선거 출마
1971년 4월 27일 국민의 직접선거(이하 직선제)의 따라 총 투표율79.80%
박정희53.2% 634만 2828표
김대중45.2% 539만 5900표
진복기 12만 2914표
박기출 4만 3753표
이종윤1만 7823표
기타  무효 49만 4598표 기권 309만 2500표였다
투표 결과 대한민국 대통령 제7대 박정희 후보 당선

1972년 유신헌법 개정 11월21일 국민투표제로 투표율91.5 찬성91.5 결과 12월 27일 유신헌법 공포===>국민에 의해 채택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 선거결과 대한민국 제 8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 제8대 유신헌법의 따라 간접선거제로(이하 간선제)로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의 선거로 대통령 결정이 가능
그렇다면 통일주겍국민의회 대의원들은 누구인가?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제도의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은 구 시 읍 면 동 등 행정구역 단위를 선거구로 하여 전국을 1,630개 구로나누되, 농촌에서 소 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도시지역에서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여 인구 2만명을 기준으로 1인에서 5인까지 다양화하여 전국의 대의원정수를 2,359명으로 하였다.)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 선거결과 대한민국 제 8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참고 : 유신경험 3년 후 1975년 2월12일에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및 재신임 국민투표도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 정당성을 재 보장받음)
   ====>국민에 의해 유신헌법 재 선택 및 박정희 대통령 재 신임 받음

1978년 5월 18일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 선거실시 제9대 대통령이자 5번째의 대통령 당선

2,583명 대의원 중 2,578명이 참여한 1978년 7월 6일 제9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다. 2,577표를 얻은(무효 1표) 박정희가 당선되어, 1978년 12월 27일
제9대 대통령이자 5번째의 대통령 당선
(참고 1975년 2월12일에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도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 정당성을 재보장받음)

1979년 10월 26일 서거
유신통치기간 : 실지적으로 직접거거에서 확보됐던 1976 부터 서거일인 1979년 까지 4 년임

 
요약 :

유신통치 18년은 좌빨 개시키들이 
역사를  왜곡한 결과이다..
    유신헌법은 2차례의 유신헌법 국민투표에서 국민이 원하고 지지해서 국민에 의해  채택되었다. 당시 국민은 무장간첩이 날뛰고 군사력이 우위였던 북의 남침과 가난을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 가치보다 우선적이라고 판단했기에 민주주의 보다 제한적 민주주의인 유신을 선호했던 것이다.
 국민이 원해서 한 유신이 비록 독재요소가 있더라도 왜 매도되어야 할 독재인가?  그리고 유신독재 18년으로 왜곡시킨 좌빨넘 좌편향 교과서는 휴지통으로 던져야 한다. 박정희는 유신을 빼더라도 1976년까지 직접선게로 임기가 보장됐었다. 유신이 독재라면 그는 확보됐던 임기(1976)를 감안하면 그의 독재에 의한 장기집권은 겨우 3년간 연장됐을 뿐이다. 산업화의 공적을 제외하더라도 좌빨덜의 역사왜곡이 이렇게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유신을 독재로 규정한 교학서 교과서도 역사가 왜곡된 좌편향 교과서이다. 역사적 팩트를 바로알고 있는 역사가는 어디로 갔는가? 없다면 이제 박대통령이라도 역사적 팩트를 말해야 한다. 왜곡된 역사의 팩트는 만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글 바른나라

출처 http://sookut.com/910132095693

박정희 대통령의 위엄

박정희 대통령
에즈라 보겔(하버드대학 명예교수):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도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박정희는 나의 롤모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제는 구국의 결단이였다!

독제는 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생각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다소 독제적인 면은 악으로 규정하기 쉽다. 혹자는 경제발전의
공으로 독제라는 과오를 덮으려고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제는 구국의 결단이였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구국의 결단이였는지 한번 arboza~


첫째, 민주주의는 일정수준 이상의 평균교육수준과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들 평균교육수준이 국민학교
졸업정도였는데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을 구분해낼 사람이나 얼마나 되엇겠는가? 더군다나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한 상황에서 
금품선거를 막을 방법이 없다. 눈앞에서 돈을 쥐어주면 권력을 잡은 후 그보다 많은 돈을 챙기는 것을 알지만 당장 내일 먹고 살게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것이 중요하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의 혜택을 국민들에게 누리게 하여 단기간에 교육수준과 수입소득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우리와
비슷한 경제발전과정을 겪고 있는 중국을 보자.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 뒤편의 빈부격차와 그로 인해 평균교육수준 역시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빈곤의 되물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사슬을 끊어버린 것이다.


둘째, 냉전시대였고 당시 대한민국은 분단되어 있었다. 당시는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었고 오랜세월 동안 한민족으로 뭉쳐
살았던 대한민국이 분단되어 민족적인 화합을 지금처럼 전 국민이 염원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지식인들 조차도 공산주의의 환상에
빠져있었고 그들로 부터 공격받는 자유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베트남을 보더라도 민족에 대한 감성과 공산주의의 환상에 빠진 내부의 간첩들 때문에 순식간에 공산화 된 사례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단순히 이것을 막은 것 뿐만 아니라 이 와중에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내기까지 했다. 


셋째, 한국이 경제발전할 방향을 제시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경공업을 발전시킨 후 그것을
기반으로 중공업을 발전시키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감하게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싶어했다.
미국과 유럽이 한국은 아직 중공업을 발전시킬 여력이 없다며 투자를 거부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에서 돈을 빌려
중화학공업에 투자했고 이것은 한강의 기적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프레이저보고서는 이 부분을 철저하게 왜곡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였어도 경제발전이 가능했으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급급한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경제발전의 페러다임을 뒤엎으며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 해당 동영상은 일본부품을 조립해서 수출하는 것을 단순히 일본경제에 종속이라며 비아냥대던데 당시
한국이 산업화를 시작할 컨텐츠는 그것이 유일했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수많은 반대와 불안요소를 안고서 적화통일을 막고 경제발전을 이룩해낸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그것은
독제가 아닌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강성대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구국의 결단임을 알 수 있다. 좌좀들은 재발 선동질에서
깨어나라. 공부하면 일베충 된다는 말은 진리다.

출처 http://sookut.com/827899750627

박정희 대통령 / Power Of Positive Thinking (긍정-肯定-의 힘)

Power Of Positive Thinking (긍정-肯定-의 힘)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 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 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 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 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꾸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
사막의 횃불은 긍정(肯定)의 횃불이다. 긍정(肯定)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긍정(肯定)은 천하를 얻고,
Positive thinking gains the whole world
부정은 깡통을 찬다.
Negative thinking is reduced to begging

출처 http://sookut.com/883950194329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박정희 유신과 70년대 국제정세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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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김종도 "故 김무생, 암 투병 당시 김주혁 부탁했다"

IS 오스트리아 소녀 "집에 가고 싶지만…" 임신까지 한 돌아올 수 없는 몸